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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기록, ‘사회적 말 걸기’ 넘어 ‘사회적 이어말하기’로 확장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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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98회 작성일19-05-20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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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기록, ‘사회적 말 걸기’ 넘어 ‘사회적 이어말하기’로 확장돼야
2019 한국장애학회 춘계 학술대회 ‘우리 삶의 기록, 장애 역사를 말한다’ 열려
장애운동과 함께 발전한 장애기록… “기록을 통해 어떠한 기억 만들지 고민해야”
등록일 [ 2019년05월19일 16시30분 ]

장애운동 내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구술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또한 장애 구술 활동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17일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2019 한국장애학회 춘계 학술대회 ‘우리 삶의 기록, 장애 역사를 말한다’가 열렸다. 이날 두 번째 발표에서 유해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이 ‘사회적 말하기와 사회적 듣기-장애 당사자의 구술기록 경험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장애 당사자의 구술기록의 함의와 나아갈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전개했다.

 

1558239589_73412.jpg17일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2019 한국장애학회 춘계 학술대회 ‘우리 삶의 기록, 장애 역사를 말한다’가 열렸다. 이날 두 번째 발표에서 유해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이 ‘사회적 말하기와 사회적 듣기-장애 당사자의 구술기록 경험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장애 당사자의 구술기록의 함의와 나아갈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전개했다. 사진 강혜민
 

장애 기록 비주류 영역… 최근 영상·문자·구술 등 기록 다양화 이뤄져
 

유해정 연구위원은 장애운동을 포함한 장애 당사자들의 삶에 대한 기록 자체가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록이 된다는 것, 기억을 만든다는 것은 누군가의 필요와 선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장애 기록이 적고, 연구자와 기록하려는 사람이 적었던 것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 나아가 장애학 의제가 매우 비주류적인 위치에 놓여 있었음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 연구위원은 장애운동의 시작이 장애 기록에서 중요한 의미를 띤다고 짚었다.

 

1990년대 후반 장애운동에 대한 기록을 시작으로 기록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엔 ‘영상’이 있었다. 유 연구위원은 “1990년대 후반 ‘에바다 민주화투쟁’이 장애운동 영상 기록의 효시”라며 이를 시작으로 장애운동에 대한 주요 기록들을 남긴 고 박종필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업, 그 외에 장애 당사자의 자체 영상 제작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이러한 토대에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교육과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10년 동안에는 문자와 구술 기록의 발전이 두드러진다. 특히 장애 당사자의 삶과 일상에 초점을 맞춘 단행본 출간의 활성화가 가장 눈에 띈다. 발간된 단행본의 특징은 △장애 당사자의 단독저작의 경우 저자가 고학력이거나 사회적으로 일정한 성취를 이뤄낸 점 △따라서 (특히 시각장애인 저자의) 장애 극복의 관점에서 쓰인 점 △장애유형으로는 지체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대다수인 점 △발달장애인을 주제로 한 단행본에서는 장애부모가 화자인 점 △장애인권 분야의 ‘구술기록집’ 등을 꼽았다.

 

구술기록, ‘사실의 증언’에서 ‘서사적 말하기·듣기’로 성장

 

유 연구위원은 특히 진보적 장애운동의 측면에서 구술기록집을 기획하고 시도하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이러한 작업은 장애 당사자의 삶과 경험, 나아가 실존적·사회적 측면을 드러냄으로써 장애인이자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삶과 사유를 사회화하고 의제화하려 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장애계에선 탈시설 장애인의 구술기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때 그의 경험은 시설에서의 삶과 탈시설 이후의 삶으로 나눠진다. 대부분 시설에서의 경험은 감금과 폭행 등 반인권적인 경우가 많다. 즉, 장애인 당사자가 자기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자연스레 인권침해 현장에 대한 폭로가 되고 증언이 된다.

 

유 연구위원은 “인권의 상실이나 훼손에 관해 이야기할 때 피해자를 경유하지 않고는 사건의 실체, 고통에 접근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구술은 인권 침해를 당한 사람을 불러내서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사건으로 어떻게 피해자의 존엄과 삶이 파괴됐는지, 그리고 사회가 어떤 문제를 가졌는지 성찰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친숙하고 접근이 용이한 발화 방법인 구술이 채택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술기록은 인권침해 사건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증거 찾기로 활용됐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에 대한 진실성 확보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또한 이를 통해 개인적 사건뿐 아니라 사회구조와 국가 폭력의 방기 또는 조장, 인권침해 등의 부정의를 규정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으로 구술자들이 ‘수동적인 인권 피해자’나 ‘권리회복을 위해 싸우는 전사’의 이미지로 고착되기도 한다. 유 연구위원은 “이러한 두 가지의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서사적 기록’이었다”고 설명했다. 

 

서사적 기록의 핵심은 발화자 삶의 경로를 따라가고, 피해에 대한 반응과 경험을 듣되 ‘사실’만이 아니라 현재 발화자가 느끼는 ‘해석’과 ‘재구성’에 주목한다. 이에 따라 구술자는 ‘피해자’라는 단 한 개의 정체성이 아닌 다양한 정체성을 지니는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장애유형, 장애영역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차이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게 된 것도 중요한 성취다.

 

2010년 이후 발간된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2013, 삶창), 『나, 함께 산다』(2018, 오월의봄), 『어쩌면 이상한 몸』(2018, 오월의봄) 등이 ‘서사적 기록’을 채택한 단행본이다. 『장애여성이 있다, 장애여성을 잇다』(2015, 상상행동 장애와여성 마실) 등 단행본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높은 완성도를 갖춘 구술기록집도 이러한 기록 방식을 따르고 있다.

 

1558239780_19211.jpg서사적 기록을 채택한 단행본. 왼쪽부터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2013, 삶창), 『나, 함께 산다』(2018, 오월의봄), 『어쩌면 이상한 몸』(2018, 오월의봄)
 

‘사회적 말하기’ 넘어, ‘사회적 이어 말하기’ 이끌어내야
 
유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구술기록 대상이 매우 한정적이었고, 출판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이후 담론 재생산에는 무관심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구술이라는 발화 방법의 한계를 짚으며, 전문 구술기록자로서의 장애 당사자 양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구술기록의 주류는 탈시설 담론이다. 따라서 40대 이상의 남성, 중증지체장애인 등 특정한 부류의 서사를 중심으로 담론이 형성돼 있다. 유 연구위원은 대체적으로 청년, 유아, 발달장애, 청각장애, 경증 장애, 여성,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직 다양하게 기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술 작업은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의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창출하고자 했던 시도였다”며 “이런 관점에서 구술을 통한 발화와 증언은 장애집단 내부의 민주주의와 권력의 수평적 분배를 재편성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 연구위원은 구술기록이 책으로 나온 이후 이에 대한 담론을 어떻게 이어가고, 재생산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술기록은 구술자 개인의 참여와 역량 강화, 치유, 사회적 변화 등을 강조하고 있어 최종적으로 출판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유 연구위원은 “타자의 삶과 접점을 만들지 못하는 발화, 기록은 쉽게 타자의 문제로 전락하거나 망각되기 쉽다”며 “특히 장애인의 구술은 고착화되고 내재화된 사회적 편견에서 타자의 이야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따라서 현재 구술기록이 ‘사회적 말하기’라는 소기의 목적 달성에 그치지 않고, 출판 후 ‘이어 말하기’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말하기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이어 말하기를 넘어 장애 당사자 내부에서의 이어 말하기, 장애운동 진영 내부에서 소외된 목소리로의 이어 말하기“라고 정의했다.

 

구술이 문자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발화 방법이라고 해도 여전히 구술이 지니는 장벽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유 연구위원은 “구술에서 가장 큰 자산은 언어인데, 발화자마다 각기 다른 언어 능력을 지니고 있다”며 “장애인의 경우 시설에 갇혀 획일적이고, 집단적인 경험으로 다양한 삶의 과정에서 소외되고 배제되는 경우가 많아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고 진작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들의 언어를 들을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수반되어야 하며, 특히 발달장애인과 청각장애인에게는 구술이 아닌 다른 발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장애인 구술기록에서 절대다수의 기록자가 비장애인이라는 불균형성에 대한 환기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연구위원은 “구술기록은 구술자와 기록자의 공동작업이자 경합의 산물”이라며 “구술자와 기록자 사이의 성별, 나이, 학력, 장애 등에 근거한 다양한 차이가 권력관계를 형성하고, 나아가 구술자를 대상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구술기록에서도 장애 당사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했던 미디어교육과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풍부하고 깊이 있는 기록의 토대가 되었던 것은 장애 당사자의 참여를 통한 역량 강화였다”며 “장애운동 진영 내부에서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전문적인 구술자와 기록 재생산을 위한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유 연구위원은 “말이 갖는 존재론적, 사회적, 관계적 힘이 존재하기에 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며 “따라서 장애운동 진영이 장애 당사자들의 사회적 증언을, 삶을 더욱 다양한 목소리로 울려 퍼지게 하고 기록하며 어떠한 기억을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558239815_18653.jpg17일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2019 한국장애학회 춘계 학술대회 ‘우리 삶의 기록, 장애 역사를 말한다’가 열렸다. 유해정 연구위원의 발표가 끝난 뒤 토론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 사진 허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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